원시의 스프 (Primordial Soup)
‘태초에 유기용질로 가득 찬 스프가 있었다. 유기물들은 그 스프가 좋았다. 그래서 생명이 있으라 하시매, 원시생물이 있었다.’ 이 원시생물들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최초의 생명체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생명체를 원활하게 물질대사와 번식을 하도록 환경에 맞게 진화시켜야 합니다. 처절한 생존의 현장 ‘원시의 스프’입니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들은 각자 하나의 ‘종’을 맡게 됩니다. 그리고 각자 자신의 종을 최대한 번식시키고, 진화시키면서 점수를 얻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개체들의 생존을 위해 수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고,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게 됩니다. 원시생물의 삶에 무엇이 그렇게 복잡한 걸까요?
정말 사랑스럽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이 원시생물에게 필요한 것은 ‘물질대사를 할 물질’ 뿐입니다. 스프에는 수많은 유기물들이 흩어져 있구요. 이 풍족한 스프에서 서로가 물질대사를 하면서 사이좋게 번식을 하다보면, 결국 남는 건 대사후의 찌꺼기, 즉 똥밖에 없습니다. 이제 생물 개체들이 하나 둘 죽어나가기 시작합니다. 그 시체는 다른 생물들의 먹이가 되어 사라집니다.
저마다 물질대사를 하고, 찌꺼기를 배출한 모습입니다.
결국 각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종, 개체들’을 죽지 않고 생존시키기 위해 각자 진화의 방향을 선택해야 합니다. 해류에 휩쓸려 다니는 원시생물들에게 좀 더 자유로운 이동력을 주어, 풍족한 지역을 찾아갈 수 있게 하거나, 물질대사에 필요한 물질의 양을 줄이거나, 심지어는 다른 개체를 잡아먹는 등의 방법들을 통해서 말이죠.
하지만 진화는 무한정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동도 마음대로 하고, 오래 살면서, 다른 종과의 전투에서도 살아남는 완전체’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자외선으로 인해 복잡한 생물체는 분해되기 때문이죠. 결국 최대한 효율적인 진화의 방향을 찾아서, 각자 생존전략을 추구하게 됩니다.
자유롭게 이동하며, 포자번식을 하는 종족입니다. 그린스킨이 떠오르네요.
이 게임은 하다보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장난감의 가장 큰 미덕은 ‘직관성’이죠. 인형 장난감은 직관적으로 아기나 새끼동물 따위를 연상시키며, 로봇 장난감은 말그대로 ‘로봇’을 상징하죠. 그리고 이 게임에서 컴포넌트들은 곧 ‘원시생물 개체’와 ‘물질’로 느껴집니다. 직접 개체들을 움직이고, 직접 물질들을 섭취한 다음, 직접 찌꺼기를 배출합니다.
이처럼 원시생물을 직접 만들어서 플레이 하기도 합니다. 좀 더 몰입이 될까요?
하지만 전략성 역시 빠지지 않죠. 사실 굉장히 빡빡한 게임입니다. 생각 없이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개체들이 굶주려 죽어가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개체 숫자를 줄이는 대신, 그 에너지를 진화에 쏟는다거나, 몇 개의 개체는 포기해서 다른 개체를 살리는 등의 전략적 선택이 매 라운드마다 중요해집니다.
그렇게 먹이를 섭취하고, 환경 변화에 적응하고, 진화를 한 다음, 자가증식을 합니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가 누군가가 특정 점수를 넘어가게 되면, 그 라운드까지 하고 게임이 끝납니다. 규칙도 단순하고, 직관적이며 또한 전략적인 게임. 게다가 처절한 원시생물들의 진화현장을 느낄 수 있는 게임. 고전게임의 미덕이 녹아있는 ‘원시의 스프’입니다.
이들의 처절함이 느껴지십니까? 직접 해보시면 알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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